< ‘사랑의 힘’은 행복한 자녀를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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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2-01-24 00:38 15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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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울대 코칭학과 박사 3기 / 남원소방서장 / 박덕규

나는 연년생인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아이들이 태어날 당시를 회상해 보면, 간호사가 안고 온 큰아들은 맑은 눈동자를 크게 뜨고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꽤 당황하고 놀랐다. 왜냐하면 갓난아이가 어떻게 저런 눈빛으로 나를 볼까? 대단히 똘똘한 아이가 태어났나보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 또 당황하고 놀랐다. 큰아이와 다르게 둘째 아이는 눈도 뜨지 못하고 쭈글쭈글해 가지고 사람 같지 않았다. 대부분 갓난아이의 모습이다. 그런 연유로 나는 은근히 걱정과 근심을 많이 했고 집에서 아이를 관찰하는 것이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나는 내 가슴 저 밑에서 커다란 책임감과 의무감이 몰려오고 있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순간 나의 머릿속에서 “세상에 어떠한 상황이 되더라도 너를 잘 돌보겠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거라!!!”하는 다짐을 하면서 아이의 눈을 바라보니, 그러한 나를 보고 아이가 눈웃음을 보여 주었다. 인간의 원초적인 교감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심전심이랄까! 그 이후로 나는 아이가 눈웃음치는 것을 보려고 틈만 나면 사랑을 담은 마음으로 아이와 눈 맞추기를 하였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3년 동안에 모든 지능이 형성된다고 했던가? 나의 사랑과 정성을 받고 자란 둘째는 모든 면에서 나를 기쁘게 해 주었다. 물론 나의 관심과 사랑은 갈수록 작은 아이에게 집중되었고 똘똘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했던 큰아이에게는 자연히 소홀하게 되었다. 맞벌이였던 우리 가족은 아이 둘을 남들보다 일찍 어린이집에 맡기게 되었다. 그곳에는 아이들이 몰려 있어 “누가 누가 잘하나?”라는 비교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큰아이와 작은 아이는 그 어린이집에서 가장 어린아이들이었다. 그런데 갈수록 작은 아이는 잘 적응했고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반면, 큰아이는 그렇지 못했다. 당시에 나는 그것이 나에게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에 그 원인과 많은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뒤에 나는 후회와 반성을 하고 꾸준하게 마음을 기울여 왔지만 큰아이와 마음의 거리가 아직도 있다. 이러한 자녀교육 체험이 준 교훈은 자녀에 대한 부모교육의 중요한 핵심은 “무조건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랑은 무엇인가?

Daum백과에서는 사랑을 ‘사람이나 존재를 아끼기 위하여 정성과 힘을 다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사랑은 가장 따뜻한, 가장 바람직한 인간관계이다. 또한 그러한 관계를 맺고 지켜가고자 하는 마음이자 마음의 움직임이다. 가슴을 가진 사람, 그리고 영성(靈性)을 갖춘 사람이 서로 유대 또는 사귐을 갖는 것이고, 그것들을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곧 사랑이다. 따라서 애틋하다고 표현된 그리움, 간절하다고 말한 ‘따름’ 등 마음의 움직임을 포함하는 소망, 열정, 욕망 등이 사랑이라고 생각되어 왔다. 그런 면에서 ‘마음을 준다.’ 또는 ‘마음을 바친다.’라는 말로, 또는 ‘정을 준다.’ 등의 말로 사랑이라는 행위를 표현해 온 것은 자못 뜻깊은 일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마다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겠지만, 미국 터프츠 대학의 심리학자 스턴버그(Robert Sternberg)는 열정(passion)과 친밀함(intimacy) 그리고 헌신(commitment) 세 가지 구성요소를 가정해 사랑의 삼각형 이론(triangular theory of love)을 제안했다. Sternberg는 “사람들의 사랑이 모두 다른 이유는 이 세 가지 요소가 서로 다르게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Sternberg는 “어떤 사람은 열정이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친밀감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헌신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맞지만 틀린 말이다.’라고 하고, 세 가지 요소가 가능한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불안정한 사랑”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사랑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을 하려면 내 안에 존재하는 사랑을 인식해야 한다. 사랑이 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사랑은 자신의 모든 세계를 몰입으로 내어주는 신비이다. 그렇다. 사랑한다면 자신의 전부를 내어 줄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누구와 나는 하나이다. 하나!!! 즉, 혼신이 하나 되는 것이다. 나는 너이고 너는 나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이다. 그런 사랑을 하려면 내 안의 사랑을 온전히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아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행하여야 한다. 어린아이는 정성과 사랑을 가득 담아서 온 마음으로 정성껏 대하여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랑에 응답이 있으리라.

또한 George Homans와 Peter M. Blau가 주장하는 사회적 교환이론(social exchange theory)에서 사람 사이의 암묵적 의무와 신뢰를 기반으로 하여 장기적 미래에 관한 보상측면을 적용해 본다면 “갓난아이에게 무한 사랑과 무한 책임을 느끼면서 눈 맞추기를 수없이 했던 나에게 아들은 기쁨과 행복 그리고 즐거움으로 보답”하고 있다.
나태주 시인은 “오늘도 네가 있어 마음속 꽃밭이다.”라고 하면서 “꽃·2”라는 시에서 “예뻐서가 아니다/ 잘나서가 아니다/ 많은 것을 가져서도 아니다/ 다만 너이기 때문에/ 네가 너이기 때문에/ 보고 싶은 것이고, 사랑스러운 것이고, 안쓰러운 것이고/ 끝내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히는 것이다/ 이유는 없다/ 있다면 오직 한 가지/ 네가 너라는 사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사랑스러운 것이고, 가득한 것이다/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나태주, 2017). 또한, “풀꽃”이란 시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영국의 시인 William Blake(1757∼1827)는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우주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고 하였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즉, ‘한 사람이 내게 오는 것은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오는 것이다.’라는 의미가 마음에 남는다.
나는 내가 낳은 아이에게도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이 글을 썼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아이를 대할 때 감정적이거나 단편적으로 대하지 말고, ‘온 우주의 근원’으로 대하고 ‘하느님’으로 대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그 아이는 어느 순간에 ‘진짜 하느님’이 되어 있을 것이다.

성찰질문1 : 우리는 자녀를 얼마나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 ?
성찰질문2 : 우리는 자기 자신을 얼마나 신뢰하고 사랑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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