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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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현(남서울전문학교 아동가족전공교수,
한국부모교육학회 부회장, 2021. 01. 22)
“이모~ 잘 계시죠?”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라(가명)가 전화를 했다. 아라는 친한 지인의 딸이다. 고민거리가 있을 땐 부모님보다 나를 찾아와 이런 저런 고민거리를 털어놓았고 이모라고 부르며 나를 따랐다. 나도 그 애를 조카처럼 사랑했다. 아라의 부모님과 우리 부부가 막역한 사이이기도 했지만 워낙 아이가 싹싹하고 착하고 사랑스럽고 예뻤기에 더욱 그러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쯤 외고에 다녔던 아라는 반에서 늘 2~3등을 했었다. 그 애가 고 2쯤 됐을 때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거의 매번 반에서 1등을 하던 같은 반 여자애가 성적이 조금 떨어져 2등을 하자 자살을 한 것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라와 반 학생들의 정신적 치료가 잘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하던 가운데 몇 주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아라 엄마가 내게 아라가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전화를 했다. 나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이모, 할 말이 있어요.”
“응, 응”
“아무에게도 안한 얘기에요. 엄마에게도 말 안했어요. 그래도 이모에게라도 말을 해야 할 거 같아서요. 끝까지 말 안하면 정말 나쁜 애 인거 같아서, 정말 쓰레기 같아서 제가 살 수 없을 거 같아서요.”
“그래, 아라야”
“ 그때 친구가 학교에서 자살했을 때 순간적으로 이제 나도 1등을 한번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어요. 그런 생각을 했던 제가 정말이지 용서가 안돼요”
“아.....”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아라의 말에 눈앞이 캄캄해지고 말할 수 없는 아픔이 몰려왔다.
“미안하구나. 아라야. 정말 미안하다. 그 애한테도 너한테도 미안해서 뭐라 말 할 수가 없구나. 너무 너무 미안해.”
친구의 죽음 앞에서 조차도 자신의 성적과 등수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런 비열한 경쟁 속으로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고 미안했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로 우리의 일상은 멈춰지고 이후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일상은 완전히 바뀌어가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혁명적으로 변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만남과 회의와 쇼핑과 은행업무가 이루어지고 있다. 스마트폰의 도입에서 코로나까지의 최근 10년은 혁명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 자율 주행차, 로봇, 온갖 디지털 기술들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지만 그것을 달리 말하면 그만큼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공감능력이 경쟁이 되고 공감이 자본인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공감이란 남이 슬퍼할 때 같이 슬퍼하고 남이 아파할 때 같이 아파하며 타인의 감정을 같이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공감 능력이 없으면 다른 아이가 괴롭힘을 당하거나 아픈 것을 보고도 무심히 지나치거나, 심지어 남의 고통을 재미있어하기도 한다.
최근 고양이 등 동물을 학대하는 영상을 공유하면서 입에 담기 힘든 성폭력적 수준의 말을 주고받는 대화방 회원들을 처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나흘 만에 20만 명이 동의했다(2011. 1. 11, KBS뉴스). 이런 뉴스들은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잔인한 냉혈한으로 커가고 있는지를 가늠케 한다.
AI가 주도하는 미래사회는 특히 공감 능력이 요구되지만 부모들은 자녀의 감정을 공감해주고 수용해주기 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좋은 성적을 내기만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정에서의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이 공감 받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 부모 밑에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법을 배울 수는 없다. 자녀의 성적을 체크하기 이전에 자녀의 부정적 정서를 먼저 헤아려주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매 학기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성적처리기간이 되면 몇몇의 학생들은 울고불고 전화를 한다. 자기가 왜 B냐고, 어떤 학생들은 자기는 C+인생이라고, 늘 C+만 받기 때문에 성적확인을 아예 안한다고. 열심히 해도 어차피 C+을 받을 거라서 열심히 안한다고
열심히 공부해서 어느 정도 기준을 넘는 성취를 보이면 누구나 A를 받을 수 있는 절대평가 과목은 거의 없고 대부분은 상대평가다. 내 친구가 잘해서 A를 받으면 그보다 1점이라도 낮은 점수를 받은 나는 설사 90점이 넘었어도 인원수에 밀려 B로 등급이 낮아진다. 이런 시스템 안에서는 학생들은 협력을 배우지 못한다. 친구들과 나 사이에는 오직 경쟁만 있을 뿐이다. 함께 잘하자가 아니라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
공감교육이 필요한 시대에 공감과 협력과 상생을 가르칠 수 없다. 급변하는 사회속에서 미래를 살아갈 다음세대를 위한 우리 어른들의 교육적 마인드는 어떠한가? 협력하며 함께 성장하는 교육, 다양한 체험을 축적하며 한명만 1등인 교육이 아닌 누구나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다. 안전한 가정, 신나는 학교, 건강한 공동체를 포기할 수 없다.
성찰질문 1. 자녀와 학생들과 고객의 마음을 어떻게 공감해주고 있는가?
성찰질문 2. 공감의 중요성에 관심을 가지고 평소 노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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