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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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1-08-22 17:10 9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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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경 옥
ICF코리아챕터 감사, 전문코치(KPC), 광신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버츄 FT.

토요일 오후, 이른 저녁을 먹고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톡이 왔다. 며느리가 영상을 보냈는데 5초짜리이다. 궁금해서 열어보니 둘째 손주가 환히 웃으며

“할머니 지금 내려가도 되요?” 라고 묻는 짧은 영상이다. 궁금해서 다시 보니 손주 앞에 펼쳐진 책이 보인다. 순간, 지난주 일요일, 저녁 식사 후 가족모임에서 며느리가 하소연하던 양이 떠올라서 지체 없이,

“그러세요. 7시 반부터 1시간 가능해요.”라고 톡으로 답변을 보냈다.
올해 나는 내 맘속에 ‘타이밍’이라는 단어를 품고 있다. 그 의미는 적시에 필요한 일들을 처리한다는 결의를 담고 있다. 가능한 한 미루지 않는 것이다.
사진 속의 손주가 입은 옷이 얇아 보이길래 윗층보다 실내온도가 낮은 우리 집의 상황을 고려하여 “옷 따뜻하게 입고 오세요.” 라고 덧붙였다. 이어지는 대화,

“아, 밖에 나가실 거에요?”며느리의 질문에  
“아니에요. 저녁 9시부터 코칭이 있어요. 지금부터 1시간 정도 시간이 있어요.”응답하였다.

톡을 보낸 뒤, 3분도 안 됬는데 손주가 조끼를 걸치고 현관문을 들어서며 할머니를 부르는 소리가 힘차다. 서재에서 읽던 책을 접어두고 나아가서 손주를 반갑게 맞이한다. 손주의 손에는 책이 들려있었다.

돌이켜보니 지난 주말에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한 후 대화 중에 며느리가 두 가지 사안에 자문을 구하였다.

하나는 네 손주가 어울려 노느라 즐거움이 넘치는 것은 좋은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 손주,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손주가 주어진 과제도 밀리고, 학원숙제도 밀린다고 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큰 손주가 식탐이 커서 너무 많은 양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외양으로 보기에도 체중이 늘어나는 모습이 걱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어머님이 도와달라고 하였다.

관련하여 구체적인 계기, 현 상황 파악, 바라는 모습, 장애요소 등 코칭대화 후에 일주일 동안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보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을 하기로 했던 것이었다. 그 첫 번째 과업에 해당되는 두명 중 한 명이 온 것이다.

둘째 손주가 눈높이 수학 과제를 들고 왔는데 일주일동안 풀어온 양이 꽤 되었다. 제법 잘 했다. 하지만, 매의 눈으로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집중하지 않고 문제를 풀어간 듯 군데군데 오답과 풀지 않은 문제가 보였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영민하게 답을 찾아가는 손주가 기특하였다.

“와아, 우리 oo이가 천재구나.”하니까 예전과 달리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평소와 다른 반응에 의아해서 손주를 바라보니 말없이 책표지를 손으로 가리킨다. 큰 손주글씨로 “oo이 바보”라고 크게 써 있는 것이 아닌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누나가 가르쳐주는데 잘 못하니까 이렇게 써주었다는 것이다.

깜짝 놀라서 “우리 oo이도 이렇게 생각해요?”하니 고개를 살살 젓는다. “그럼 지울래요?” 지우개로 건네자 열심히 지운다.

“할머니가 보니까 우리 oo이는 무슨 일을 하든지 집중력이 아주 뛰어나요.”
큰 눈을 굴리며 빤히 쳐다보는 눈속에 그 동안의 억울함, 설움이 그득하다.

“공놀이할 때도 신나게 놀고, 그림그릴 때도 그림만 생각하고 열심히 그리고, 밥 먹을 때도 천천히 꼭꼭 씹어 먹고, 오늘 문제 푸는 모습을 바라보니까 아주 집중을 잘해요. 할머니 말이 맞나요?”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는 손주의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로봇변신도 잘 하고” 자신도 한마디 거든다.
“와아, 그렇구나. 또 뭐가 있을까?” 질문에
“킥보드도 잘 타고, 수도 잘 세고, 썰매도 잘 타고, 그림동화책도 잘 보고,
영어도 잘하고,……”종목이 줄줄이 이어진다.  

“거봐요, 분명 우리 oo이는 천재에요. 천재는 보통사람에 비해 뛰어난 정신능력을 가진 사람이래요. 우리 oo이가 몇 살이에요?”내가 큰 소리로 묻자

고사리 같은 두 손을 펼쳐들고 손가락을 펴면서 “6살이에요.”한다.

“와아, 6살인데 이렇게 잘 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매일, 공부도 시간을 내서 잊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 믿어요.”
얼굴이 환해지면서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주말이면 손주들에게 다양한 멍석을 깔아주는 우리 거실은 놀이터, 운동장, 교실, 화실, 기원, 조리실, 키즈카페, 도서관이 되기도 한다.

때론 출발! 하며 식탁 두 바퀴를 돌아서 현관문 찍고, 화장실문 찍고, TV 한번 바라보고 서재 거쳐서 도착! 도착지에 깃발을 세우기 위해 달리기를 하는 운동장 무대가 되기도 한다.

때론 이젤 위에 이동식 화이트보드를 올려놓고 이동식 칼라 의자를 가져다가 네 명이 각자 원하는 곳에 앉아서 야외나들이 나온 것처럼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완성된 그림의 칼라와 다양한 시각에 우리어른들은 감탄의 마음을 담아 찬사를 보낸다.

때론, 크기가 다른 다양한 공을 10번씩 10번을 세면서 주고 받거나 드리볼하는 배구연습장이 되기도 한다. 운동기구에 커다란 바구니를 달아놓고 뛰어가며 공을 던져넣는 농구연습장이 되기도 한다. 배드민턴공이나, 고무공, 탁구공으로 공의 촉감, 무게, 온도가 다른 느낌을 감각으로 체험하고 패스하는 구장이 되기도 한다.

색색이 다른 모양의 풍선을 세 개, 다섯 개 불어서 몸에 감고 머리에 메고 인디언처럼 다양한 제스쳐로 풍선칼 싸움도 하고, 동화속의 소년 소녀처럼, 하늘을 나는 꿈을 꾸기도 한다.

한 공간을 다양하게 연출하는 나의놀이 기획 의도는 어떤 상황에도 우리는 재미(즐거움, 기뻐함)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 즐거운 상황을 경험하도록 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 상황은 아이들에게 추억으로 채곡채곡 쌓아지리라.  

한참 후에 큰 손주도 학령에 걸맞게 많은 과제를 들고 와서 수정보완하면서 나눈 대화들이 정겨움으로 남는다. 큰 손주에게도 탁월함과 천재를 언급하며 “할머니보다 우연이가 공부를 더 많이 하는구나.” 했더니 환하게 웃는다. 둘째 손주가 자신의 책표지에 흔적없이 사라진 ‘OO이는 바보’라는 글씨를 가리키자 킥킥 웃는다.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대화 속에 할머니의 자신에 대한 사랑과 신뢰감이 네 살이나 어린 동생에 대한 이해, 도움으로 전해졌으리라 믿어본다.  

오늘은 우리 집에 도서관 멍석을 깔았다. 손주들이 내려올 때의 긴장한 태도와 달리 수정 보완하여 모두 만점을 받고 기뻐하였다. 웃음과 칭찬으로 자신감이 배가된 모습으로 돌아가는 양을 바라보며 흐뭇했다.

우리의 육신과 영혼이 자유롭게 허공을 날 수 있을 때 창의력이나 자신감이 커진다고 한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 누군가 풀리지 않은 일들을 붙들고 다가올 때, 잠시 잠깐이나마, 그의 육신과 영혼을 위해 어떤 돗자리를 깔아줄까, 매일 매순간, 곰곰히 생각하는 이유이다.

성찰질문1: 나는 오늘 어떤 돗자리를 펼쳐서 누군가의 육신과 영혼을 자유롭게 하였는가?  
성찰질문2: 나는 오늘 천재로서 다른 천재, 그 누군가와 현존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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