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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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2-01-24 00:54 38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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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후(우송대학교 IT융합학부 교수)

‘의미’는 인간의 삶에서 뗄래야 뗄수 없는 단어이다. 의식을 하든 하지 못하든 인간은 의미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한 순간, 한 순간 모든 행위들이 자신이 구축한 의미의 세계안에서 해석되어지며, 이는 삶의 행복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의미를 상실한 인간은 허무 속에 자아를 찾지 못하고 목적없이 방황하거나 허무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또한 ‘의미’는 우리 인간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기도 한다. 단순히 본능적인 충동과 행위는그 자체로 남지 못하고 '의미화’ 되어야 하며, 행위 자체 보다는 해석된 의미로서의 행위로 남겨지도록 강요된다.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밀란 쿤데라는 인간은 순간의 찰라를 살아갈 수 있을 뿐이며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고, 같은 시간을 두 번 살수 없기에 무의미하다고 얘기한다. 어찌보면 허무주의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니체의 능동적 니힐리즘을 향한 처절한 여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세계관에서 만들어지는 의미부여는 삶의 역사이기도 하며, 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한다’는 명제 속에 의미는 해석되고 ‘그렇게 하지 못할 때’ 우리는 긴장 속에서 외롭게 방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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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하면서 우리는 대화의 무게를 느낄 때가 많다. 가벼운 대화가 있는가하면 묵직한 무게를 느끼게하는 대화도 있다. 또는 대화를 하는 도중 무게가 변화되기도 한다. 대화의 무게는 대화에 대한 의미의 무게이기도 하다. 대화가 무거워질 때 이야기는 심각해지고 두 사람은 무게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자녀와의 대화, 부부간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준비물을 미리 챙기지 않아 학교에서 친구에게 빌려서 잘 해결했다고 얘기하는 자녀의 가벼움에 부모는 자녀가 준비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미숙함, 혹은 그것을 챙겨주지 못한 자신의 부주의로 무게가 더해지고 이러한 무게는 과도하게 부정적인 미래를 투사한다. 이제 자녀의 가벼웠던 얘기는 엄청난 무게를 가지게 되고, 자녀도 부모도 모두 감당하기 쉽지 않게 된다. 부부간의 대화 또한 다르지 않다. 일주일 내내 집에서 식사 준비에 지친 아내의 처지에는 아랑곳 없이 휴일날 ‘역시 집밥이 최고’라는 남편의 가볍고 철없는(?) 대화는 아내에게 전혀 그러하지 못하다. 가볍게 대응하려 ‘휴일인데 나가서 먹자’고 대응한 아내에게 뭘 나가서 먹냐고 버티는 남편을 보며 대화의 무게가 무거워 지기 시작한다. 한 번 무게를 가지기 시작한 대화는 가속이 붙고 통제하기가 어려워 진다.

자녀와의 대화, 부부간의 대화에서 가능하면 대화의 무게를 가볍게하기를 제안한다. 물론 진지하고 무거운 대화가 불필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무거워질 필요가 없는 대화를 굳이 무겁게 끌고가지 말자는 것이다. 실제 대부분의 대화를 보면 무거운 주제 조차도 가볍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즉, 우리 모두가 무거운 대화보다는 가벼운 대화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화에 무게를 조금만 들어내면서 얘기를 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니면 말고” 식이 너무 과하다면 ‘이건 어때?’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정도면 어떨까? 어찌되었건 한사람의 대화의 무게가 상대방을 덮기 시작하면 그 대화의 끝은 항상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성찰질문:


1. 나는 대화에서 무게를 더하는가? 덜어내는가?
2. 무게를 덜어내기 위한 나의 마음가짐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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