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나르시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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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1-08-21 21:41 29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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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경 옥

ICF코리아챕터 감사, 전문코치(KPC), 광신대학교 복지상담융합학부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태풍 하이선-노을-돌핀이 떼 지어 다녀간 후 꽃나무, 과실나무, 곡식들이 바빠졌다. 여름 태풍들이 무사히 지나가길 기다리다 추분이 다가오니 얼마나 마음이 분주하겠는가.


 불갑산 상사화 꽃길도 추석 채비로 한창이다. 예년 같으면 상사화축제 준비로 떠들썩할 터인데, 무축제의 고요함과 차분함에 주말 오후, 붉은 상사화의 화려함이 더욱 돋보였다. 코로나 집단감염 예방 차원에서 입장객들의 열 체크는 필수, 입장하는 길과 퇴장하는 길이 서로 달랐다. 최소한 마주 오는 사람과 마주치지 않아서 안심이 되었다.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잠깐 마스크를 벗고 있는 관광객에게는 “마스크 쓰세요, 사람이 많습니다.”쏜살같이 내지른다. 자원봉사자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주변에서 감염 예방을 위한 공중의식을 챙겨주니 감사할 일이다.

예년에는 관광버스가 줄이어 서 있었는데 버스 주차장이 텅비어 있고 자가용 주차장이 만석이다. 단체활동을 많이 자제하고 가족단위나 소그룹으로 이동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나가는 양을 살펴보면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앞으로 아이 둘과 부부가 지나간다. 3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인다. 엄마가 아기가 탄 유모차에 가방을 매단 채 유모차를 밀고 간다. 6살 쯤 되어 보이는 큰 애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종종 걸음으로 평평하지 않은 흙길을 위태위태 따라간다. 아빠는 핸드폰을 확인하고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한다.                        

 

 아이가 자꾸 엄마를 부르며 칭얼대는 소리가 꽤 크게 들린다. 엄마는 조금 떨어져서 걸으라고 귀찮다는 말과 표정을 고스란히 아이에게 보낸다. 이처럼 아름다운 꽃길에서 아이는 아름다운 꽃을 감상할 만큼 편안하지 못한 듯하다. “엄마가 내 말을 안 들어주는구나.”아이의 표정으로 보아 마음이 편치 않을 엄마의 심정도 헤아려 본다. 


 아름다운 꽃천지와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사람들의 밝은 분위기와 대조적인 부부의 표정과 태도를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어지는 행렬에서 밀려가는 인파 속에 이름도 성도 모르는 가족이지만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아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들어줄 수 없었을까? 필시, 출발할 때 마음은, 꽃을 보면서 함께 행복감을 느끼고 싶은 기대감이 있었을 텐데... 가족나들이가 좋은 추억으로 자리잡아야 할 텐데... 

 

 갓난아기 시절부터 유년기에 형성되는 건강한 자기애는 예쁨을 받고 자라면서 생겨난다. 엄마 아빠가 아이의 요청에 즉각적으로 반응해줄 때 아이는 ‘자기가 최고’라고 느낀다. 아이가 방긋 웃으면 엄마가 방긋 웃어주고, 어떤 모습에도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것을 반사(mirroring)라고 한다. 엄마라는 거울에 비친 자기를 바라보며 “나는 예쁜 아이구나, 최고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런데 바쁘거나 힘들거나 우울하다는 핑게로 일상에서 즉각 반사를 주지 않아 “내가 사랑받는 존재가 아니구나”라는 결핍 경험을 자주 갖다 보면 건강한 자기애(healthy narcissim)를 형성하지 못하게 된다. 

 

 마음속에 사랑이 굶주리면 건강한 자기가 형성되지 못하고 조그만 충격이 가해져도 금이 간 유리그릇처럼 깨져버린다. 청소년이 되어서는 학교에서, 성인이 된 후 직장에서도 적응하기가 힘들다. 조금만 위기가 닥쳐와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쉽게 포기하거나 자꾸 이직을 하게 된다. 굶주린 사랑을 보상하기 위해 남들을 착취하거나 지배하거나 거만한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되기도 한다.  


 유년시절에는 순간 순간 부모의 건강한 말 한 마디, 표정, 태도가 아이의 오감으로 고스란히 입력되어 아이가 건강한 자기를 형성해가도록 돕는 것이다. 아이와 말할 때는 눈을 바라봐주고 끄덕여주고 아이의 말을 반복해서 되돌려주고 이러한 사소한 순간들이 건강한 아이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자원인 것이다. 


  함께 간 손녀의 손을 꼭 잡고 행렬을 따라가며 사진도 찍고 꽃도 바라보았다. “상사화가 어떤 구조일까?”궁금증으로 바라보자니, 잎도 없이 쑤욱 올라온 꽃대 하나에서 6개의 줄기가 나서 각 줄기에 기다란 꽃잎이 6개가 나 있다. 각 꽃에 수술도 6개다.“ 할머니! 꽃대 하나에 이파리도 36개 수술도 36개네요.” 손녀의 일성에 “와아, 우리 우연이가 숫자 공부하고 있었네.”우린 마주 보며 많이 웃었다. 


 출발전, 며느리의 은밀한 요청에 의하면 그림대회에 내보낼 그림 과제가 있는데 손녀가 미룬다는 것이었다. 이동시간까지 3시간 정도 예상하고 흔쾌히 수락하였다. 상사화꽃이 한창이니 한 바퀴 둘러보자고 세 손주를 따돌리고 나섰다. 주차하고 걷다 보니 금새 한 시간이 지났다.“할머니 다리 안 아프세요?”손녀가 쉬어 가자고 한다. 


 중간지점에서 자리잡고 앉아서 준비해간 과일과 모싯잎 송편을 먹었다. 사과보다는 배가 맛있고 콩송편보다는 깨송편이 더 맛있다는 손녀에게 떡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내려오는 길에 빨리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는 손녀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참새방앗간처럼 들리는 곳이 있다. 손녀가 무척 좋아하는 곳이다.“우연이는 무엇이 필요할까?” 읍내에서 꿈의 문구점에 들러서 손녀는 꾸미기 장난감을, 나는 예쁜 필기도구 네 개를 들고 계산대에 줄을 섰다. 직원이 계산한 8,200원 숫자를 보고 손녀가 “8,200원?”하며 눈을 크게 뜬다. 손녀에게는 큰 돈이다. 마주 보고 웃었다.  


“할머니는 내 편”이라는 손녀의 말을 기억하며 오늘도 온전히 손녀 편이 되어주었다. 수많은 질문과 응답을 하며 조금 더 친해졌다. 그리고 철든 나에겐 추억이 한 켜 더 쌓였다.


 “날봐 날봐 지금 당장 날 봐요”라고 요청하는 ‘날봐 귀순(대성)’이라는 노래를 최근에 미스터 트롯에서 이찬원과 장민호 듀엣으로 들은 적이 있다. 이 노래에서도  자기가 형성된 성인이 되어서도 의미있는 누군가가 바라봐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전해진다.  


성찰질문1: 나는 오늘 누군가를 웃으며 바라보고 눈을 맞추고 온몸으로 끄덕여 주겠는가?  

성찰질문2: 나는 내 마음속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며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위로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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