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의 자아개념형성과 정서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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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 옥
ICF코리아챕터 감사, 전문코치(KPC), 광신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버츄 FT.
코로나 사태로 가슴 졸이던 학부모들의 따가운 여름이 홀연히 떠나고, 청명한 하늘 아래 풍요로운 오곡과 풍성한 과일로 넉넉한 가을이 성큼 가까이 다가왔다.
주말 저녁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귀여운 손주들을 위한 30분, 저녁식사 후 가을 프로그램의 개편을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중심잡기 교구재를 준비하였다. 색상도 다양하고 모양도 색달라서 아이들이 흥미롭게 참여할 수 있을 듯하였다.
활동이 많은 여름에는 자연의 변화를 보고 생각을 나누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차분하고 평면적인 활동을 많이 하였다. 점차 추워지는 계절에 대비하여 움츠러지는 몸을 움직이고 손도 움직이는 입체적인 활동을 해보려는 것이다.
주문하여 도착한 교구재가 새로운 도구라서, 설명서를 보면서 두서너 차례 연습하고서야 제작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10세, 6세 손주들에게 먼저 새 교구재 한 세트씩 나눠 주었다. 골프 공 쌓기(공 3개, 너트 3개), 나무 원판 세우기(5개), 긴 사각나무 세우기(가는 나무 2개, 굵은 나무 4개)등, 무거운 것부터 가벼운 것으로 3단계로 재료를 나열하였다.
중심잡기 과정이 어렵진 않으나 진행하는 중에 흔들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는 데 집중력이 필요했다. 평소 사려깊은 큰 손주는 2단계까지는 거뜬하게 잘 하다가 마지막 3단계인 굵기가 다른 긴 나무 네 개 세우기에서는 자신이 없어 하였다. “할머니, 이건 잘 안 되요, 도와주세요.”한다.“그러게 나도 어렵더구나. 우연이가 다시 한번 해 볼까?”하며 곁에서 바라보자“네”하며 길고 굵은 나무와 길고 가는 나무의 무게도 가늠해보고 기울기도 들여다보며 좀 더 세심히 관찰한다. 그 신중한 모습이 손주에게는 참으로 귀한 체험이라 생각된다.
둘째 손주는 로봇조립을 많이 해봐서인지 1단계는 거뜬히, 2단계는 수 차례 시행착오 후 70% 완성하였다. 이 교구재는 조립품처럼 한번 조립하면 의도적으로 해체하지 않는 한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속성과 달리 작은 미동에도 넘어져 버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자꾸 넘어져요, 풀로 붙일까요?”발상이 새롭다. “와아, 우리 탁월한 인환이가 그런 생각을 다했어요? 먼저, 그림 순서대로 다시 한번 해 볼까요?”나도 지켜보면서 새로운 통찰이 생겼다. 자신의 의도대로 쉽게 할 수 있는 것과 그 과정이 어려운 것 등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되겠구나 싶었다.
지난 주에 체험하였던 나무쌓기는 이 교구재에 비하면 부피와 무게가 있어서 큰 손주에게는 쉬운 과정이었고, 아직 섬세한 손가락 작업에 익숙치 않은 둘째에게는 도전이었지만, 몇 차례 시도 끝에 잘 완성하였다. 그런데 자신들은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이번 주에 준비한 가벼운 재료들은 조금 더 어려운 과업이었던 듯하다.
20분 정도의 활동을 마치고 느낀 점을 물으니 쉬울 것 같은데 어려웠다고 한다. “다음 번에 더 잘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할까?”는 질문에 “주변을 정리하고 조용하게 조심스럽게 쌓으면 더 잘할 것 같다”고 한다. 사진을 각자 포즈대로 찍어주고 다음 번에 다시 해보기로 하고 뒷정리를 하며 서로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매사 형들에 비해 힘도 딸리고 몸집이 적어 폭발적인 울음과 그침으로 의사표시를 잘 하곤 하는 셋째, 넷째 손주에게는 질문부터 시작한다.
“명재는 오늘 몇 번 울었어요?”묻었다. 응답은 늘 “안 울었어요.”이다. 셋째 손주에게 “동생 명재가 오늘 몇 번 울었어요?”물으니 손가락으로 세 개를 펼쳐 보인다. 막내 손주에게 “오늘은 왜, 세 번이나 울었어요?”물으면 “형아가 ~~~ ” 이실직고 한다. “아이구, 그랬어요? 지난 번 보다는 많이 울었어요? 적게 울었어요?”하면 답은 늘 똑같다.“적게 울었어요.”라고 답한다. “아이구, 잘했어요, 지난 번 보다 적게 울었으니 오늘도 재미난 놀이해 볼까요?”하면 “네~” 천정이 떠나갈 것 같다.
이번에는 넷째 손주에게 같은 방법으로 질문하고 응답받고 격려해준다. 둘이서 함께 다각형 나무쌓기를 시작하는데 놀랍게도 지난 번에 비해 훨씬 손놀림이 빠르고 이해도 빠르다. 활동을 하기 전에 상황에 따른 질문과 응답은 활동을 즐겁게 하기 위한 끈끈한 유대 형성에 도움이 된다.
셋째, 넷째 손주는 나무 쌓기보다 좀 더 어려운 중심잡기 교구재를 자꾸 곁눈질하지만, 아직은 어림없다. 셋째가 다각형 나무를 쌓다가 쌓은 게 자꾸 넘어지니까 “나는 못 해! 나는 못 해!”하면서 엉엉 울기 시작한다. 다가가서 등을 토닥이며 “아이구, 우리 보배가 쌓은 게 넘어져서 속상했구나. 다시 쌓아 볼까?”라고 말을 건네니 뚝 그치며 재도전한다. 셋째가 무언가를 시도해 보고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기쁘다.
넷째는 아직 과업에 대해 이해도는 낮지만, 형이랑 앉아서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 좋다는 태도인 듯 그저 행복하다. 다가가서 “우리 명재가 참 잘하고 있어요. 재미있어요?”하면 “네, 이거는 ~ 저거는~ ”하며 주렁주렁 말의 열매를 단다. “우리 명재가 탁월해요” 하면 뜻을 아는지 모르는 지 좋아라 하며 활짝 웃는다. 마지막에 작품을 앞에 놓고 사진을 찍자고 하니 각자 멋진 포즈를 취한다.
영유아기에 부모와 주양육자와의 애착 관계가 잘 형성이 되면 신체적인 발달 정도에 따른 언어·인지적 발달, 사회·정서적 발달이 잘 이루어져서 관련된 과제 수행이 잘 된다. 마음이 따뜻하면서도 분별력이 지혜로운 며느리가 육아휴직 기간이라서 집에서 알뜰하게 챙긴다.
코로나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의 정책의 방편으로 격일제 등교 등, 사남매가 집안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봄·여름, 계절을 지나는 사이 셋째, 넷째가 부쩍 자라고 철이 든 느낌이 들었다.
유아가 적절한 자아개념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공감,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진 기대인지, 주변 환경의 복잡함,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과 통제력 등을 가져야 한다. 놀이를 통해서 유아는 사회적 관계 형성과 상호작용기술 등을 배우고 규칙과 기준을 학습할 수 있다. 그 과정 중에 사회적 유능감을 발달시키고 사회화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1주일에 주말 밤 30분,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에겐 리츄얼이다. 손수 쌓고 무너지고 하는 과정에서 손끝으로 마음결로 체험한 이 시간의 우리들의 경험은 참 소중하다. 반복을 통해 점차 잘 쌓게 되어 스스로 쉽다고 느껴질 정도로 만족하게 되면 아이들의 무의식의 저장고에서 자신감의 형태로 자리 잡을 것이다.
나는, 그 사이에 또 다른 창의적인 교구재를 준비할 것이다.
순간, 정신과 전문의이며 정신분석가이신 이무석 교수님이 언젠가 내게 하신 말씀이 뇌리에 스친다.
“마음이 따뜻하고 창의적인 할머니를 둔 손주들은 참 행복한 아이들입니다.”
교수님의 인자하고 온화한 눈빛이 눈앞에서 떠오르며, 때때로 다시금 옷깃을 여미곤 한다.
성찰질문1: 나는 오늘 사랑의 마음을 담아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반응하였는가?
성찰질문2: 나는 누군가에게 자신있게 말해줄 수 있는 산 경험, 즉, 반복을 통하여 학습한 습관이나 취미, 특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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